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데이비드 오티즈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으로 원래는 데이비드 아리아스라는 이름으로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했으나 1996년 데이브 홀린스를 대가로 [[미네소타 트윈스]]에 트레이드 되어 1997년 트윈스의 [[1루수]] 겸 [[지명타자]]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미네소타 트윈스]]에서는 1999년부터 풀타임 지명타자로 활약하면서 2002년 타율 .272 20홈런 75타점 OPS .839를 기록하면서 준수한 활약을 했지만, 좌투수 상대 약점과 부상문제, 그리고 당시 감독인 [[톰 켈리]]가 그의 둔한 몸놀림과 수비를 이유로 지명타자에만 고정해 불만이 쌓였고, 결국 논텐더로 풀리면서 트윈스와 결별했다. 그리고 2003년에 [[테오 엡스타인]]이 집권한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했다. 그해부터 보스턴의 간판이었던 [[노마 가르시아파라]], [[매니 라미레즈]]와 나란히 중심타선을 형성(주로 5번타순)하며 그해 커리어 처음으로 30홈런을 넘기며 보스턴의 핵타선을 이끌어 냈고 이듬해 가르시아파라 이적 후 라미레즈와 [[다이나믹 듀오]]라는 닉네임으로 레드삭스의 중심타선의 핵으로 급부상했으며, 결국 그해 2004년 레드삭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2004 ALCS]]에서는 MVP를 수상하였다. 오티즈가 상승곡선을 그렸던 원동력은 그의 약점이던 좌투수 상대능력 개선, 그리고 왼손 강타자에게 유리한 홈구장인 [[펜웨이 파크]]의 효과까지 더해지면서 기록이 상승했다.[* 팬들의 선입견과는 달리 펜웨이가 좌타자에게 유리하다는 것은 전적으로 이미지에 한정된 것이다. 우측 폴대까지의 거리가 짧다고 하지만 우중간부터 중앙 필드까지의 거리는 110m를 넘어가기 때문에 홈런 팩터로 보았을 때 대부분의 좌타자들은 펜웨이에서 오히려 손해를 본다. 2016년 기준 AT&T 파크와 말린즈 스타디움에 이어 좌타홈런팩터에서 뒤에서 세번째. 오티즈의 보스턴 커리어 528홈런 중 홈에서 생산한 홈런의 수는 236개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다만 필드가 그만큼 넓은 탓에 외야수가 수비영역을 모두 커버하기 힘들기 때문에 홈런을 제외한 타격에서 이득을 봤을 뿐이다. 오티즈의 보스턴 이적 후 성공은 구장빨보다는 [[매니 라미레즈]]의 우산효과와 선구안의 상승등으로 보인다.] [youtube(SqXcryaTxWI,start=8)] 2004년 도쿄 돔에서 치러진 미일 야구 대회에서는 [[와타나베 슌스케]]에게 비거리 160m에 해당되는 특대 홈런을 쳐 도쿄 돔의 우익석에 맞았다. 그 이후에 2004년부터 2006년까지 40홈런 이상을 때려내며 꾸준히 보스턴 레드삭스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으며, 특히 2006년에는 .287 .413 .636 54홈런 137타점로 보스턴의 단일시즌 홈런 기록을 경신하였고 2007년에는 35홈런에 OPS 1.066을기록하고 두번째 우승과 함께 커리어 정점에 섰었다. 그러나 이듬해 2008년부터 하향세를 그렸고, 2009년에는 .238 .332 .462 28홈런 99타점를 기록하며 완전히 몰락해버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나마 후반기에 좀 처주면서 오른 스탯이 이정도다. 하지만 2010년에는 다시 회복하면서 .270 .370 .529 32홈런 102타점를 기록했다. 09년에 지적되었던 빠른 공에 대한 대응 능력이 많이 향상되면서 타율과 장타력이 많이 회복되었다. 오티즈가 근 몇년 동안 골프를 좋아하는 바람에 자선 골프 대회등을 열면서 골프를 즐겼는데 골프의 스윙과 야구의 스윙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로 인해서 최근 슬럼프를 겪게 되었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2010년 열린 올스타전 [[홈런 더비]]에서는 1라운드에 8개, 2라운드에 13개를 날려 결승에 진출했으며 결승에서는 11개를 펜스밖으로 날려 우승을 차지했다. 2011년에는 팀과 선수 쌍방이 모두 옵션을 행사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11월 4일자로 구단에서 옵션을 행사하여 2011년 시즌에도 보스턴에서 뛰게 되었다. 일단 2010년 성적도 어느정도 회복되었고 나이가 만으로 겨우 35살에 불과했으니 예정된 수순이었다. 2011년에도 29홈런을 날리는 등 준수한 활약을 선보이며 시즌 종료 후 FA가 되었는데, 팀의 페이롤 사정이 [[칼 크로포드|먹]][[존 래키|튀]]들 때문에 [[영 좋지 않은]]지라 재계약이 불투명했다. 이미 [[조나단 파펠본]]이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이적했고 오티즈 역시 지명타자밖에 못한다는 이유로 몸값이 많이 후려쳐질 가능성이 높았다. 대체로 팬들은 오티즈만한 위엄을 가진 타자도 별로 없기 때문에 오티즈를 버릴거면 [[푸홀스|구홀스]]나 [[프린스 필더|왕자님]]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반응. 한편으로는 내셔널리그 팀들까지도 푸홀스나 필더를 못잡을 경우에 대비하여 오티즈를 1루수로 노리기도 했다. 하지만 [[바비 발렌타인]] 감독이 직접 도미니카까지 가서 그를 설득했고, 결국 오티즈는 보스턴과의 1년 재계약에 합의했다. 연봉은 11시즌의 1250만달러보다는 약간 높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사실 09, 10시즌의 부진도 있고 해서 타 구단에서 그리 좋은 오퍼를 부르지 않을 것을 감안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2012년에는 부상으로 살짝 주춤했지만 다시 2년 $26M의 계약에 합의하였다. 계약 과정에서 자신이 수비를 못하고 나이도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2년 계약만 받아도 만족한다는 인터뷰를 하여 미쳐 돌아가고 있는 FA 시장에서 팬들이 오티즈를 칭찬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에드가 마르티네즈]]를 넘어 지명타자로서 가장 많은 안타를 때려낸 선수가 되기도 했다. 또한 비록 미국으로 귀화했지만 여전히 고향에 대한 정이 있어서 도미니카에 병원을 세우는 등 사회봉사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약물 관련 흑역사로 인해 평판도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지만, 오티즈가 09, 10 시즌의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밀어치기를 연마하고 부상도 참고 뛰는 모습을 보이면서 이전보다는 인식이 그래도 쪼오오금 나아졌다. 고령의 나이에도 3-4-5를 친다는 건 그만큼 남아 있는 약빨이 있었다는 증거니까. 그래도 열렬한 보스턴 팬들의 지지도 있고, 그나마 약물 스캔들에서 이미지가 괜찮은 선수. 물론 어디까지나 '''그나마'''이지 평생 까임권을 뗄 수는 없다. 2013 정규시즌에는 .309 .395 .564 .959 30홈런 103타점의 호성적을 내었다. 포스트시즌에서는 그야말로 가을의 남자 강림. 월드 시리즈에서 '''.688 .760 1.188'''에, OPS '''1.948'''이란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에하라 고지]]를 제치고 MVP도 먹었다. 그리고 보스턴 마라톤 테러사건 이후 첫경기에서 '''"THIS IS OUR FUXXING CITY"'''라고 외치며 모든 보스턴 주민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것과 스프링캠프부터 시작된 자니 곰스를 중심으로 클럽하우스의 분위기 쇄신 및 수염군단[* 모두가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누구는 매일 아침 일어나 수염에 삼푸와 린스칠까지 하고 독창적인 스타일과 함께 수염따라 이름도 따로 붙이는등, 수염하나로 보스턴 선수들과 프런트 둘다 바빴었던 한해.] 단결력의 빠워와 함께 반지를 하나 더 추가했고 보스턴 팬들에게 영구까방권 획득했다. MVP 수상때도 한번 더 시전했다. 큰 경기(월드 시리즈, ALCS)에서 경기의 분위기를 뒤집거나 승리요정으로서 큰 한방 등으로 보스턴 팬층의 지지가 두터운데 오티즈가 양키스로 가지 않고 은퇴한다면 최소 레드삭스 명예의 전당에도 들어갈수 있다. 2014 시즌 성적은 .263 .355 .517 .872 35홈런 104타점으로 마무리되었다. 본인의 8번째 30홈런-100타점 시즌을 만들어냈고 통산 466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이는 메이저리그 역대 33위의 기록이다. 2015년 8월 중순까지 팀은 부진했으나 지난해와 비슷한 2할6푼에 25홈런 73타점을 기록하고 통산 491홈런을 때려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빠르면 2015시즌에, 늦어도 2016시즌 극초반에는 500홈런 돌파가 확실시되었다. 그리고 9월 12일, 500홈런을 달성했다. 2015 시즌 성적은 .273 .360 .553 .913 37홈런 108타점으로 본인의 9번째 30홈런-100타점 시즌을 만들어냈다. 2016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한다는 기사가 떴다. 2016년 5월 22일(현지 시각)까지 .329 .408 .684 1.096 11홈런 37타점을 기록하며 은퇴시즌에 커리어 하이를 찍을 기세다. 전반기 장타율1위 출루율1위를 기록하며 자신의 메이저리그 마지막 올스타전에 나왔다. 2번째 타석에 볼넷을 고르고 교체되면서 마지막 올스타전 출전을 마쳤다. 2016년 8월 24일 (현지 시각) .321 .412 .633 1.045 29홈런 98타점의 기록을 은퇴시즌에 찍어주고 있고, 8월 24일 [[템파베이 레이스]]와의 경기에서 30홈런을 때리고 5회까지 2타점을 적립하며 10번째 30홈런 100타점 시즌을 기록하였다. 2016년 9월 21일 볼티모어전에서 36호 홈런을 때리면서 데이브 킹맨이 가지고있던 은퇴시즌 최다 홈런 기록(종전 35개)을 넘어섰다. 시즌 최종 성적 .315 .401 .620 1.021 38홈런 127타점으로 [[에드윈 엔카나시온]]과 함께 리그 타점 공동 1위를 마크. 그리고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기념식을 가졌으며 보스턴은 2017 시즌에 [[펜웨이 파크]]에서 오티즈의 영구결번식이 거행된다고 발표했다. 이후 2017년 6월 24일, 공식적으로 그의 번호 34번은 레드삭스 사상 10번째 영구결번이 되었다. 은퇴 이후 [[FOX Sports]]의 해설가로 합류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